요즘 생각도 많고 일도 바뻐서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지 않고 있다. 신년에는 글도 더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첫 주에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글을 쓰면, 특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이런 생각이 들거나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안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낫다
쓸거면 잘 쓰는 것이 낫다
이 두 생각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데 가장 피곤한 형태는 “잘 쓰지 못한다면 안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본인만 하면 모르겠는데 남이 쓴 글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건설적으로 듣지 못한다면 글 쓸 자격이 없다느니, 자신이 아무 말 해놓고는 그 책임을 글쓴이에게 전적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글 쓰는 사람은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런 대화를 보면 나는 글 쓰질 말아야지 결심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나 무서운 일이다.
늘 글을 쓰는 일을 생각하며 지내지만 이런 대화를 듣거나 보고나면 계속 글을 쓰는게 맞나 생각이 맴돈다. 마치 개미지옥과 같아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먼저,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잘 쓰는지 못쓰는지 알 수 없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의 맛을 알고 싶다면 물론 인터넷 검색해보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직접 먹어보는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그 글도 한 두 번 써본다고 잘 쓰는지 알기 어렵다. 맛집찾기와 비슷한 과정이다. 많이 먹어보기 전에는 어느 집이 맛있는지 비교하기 힘들다. 자신이 어떻게 글을 쓸 때 즐겁고, 더 깊이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알고 싶다면 꾸준히 써봐야 한다. 100개 포스트 올리기 같은 목표를 만들고 달성해보는 식이다.
그리고 글은 독자가 있어야 다듬어진다. 가장 이상적인 독자는 가까이 있는 사람 중 기꺼이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줄 분이다. “아는 사람”은 질 높은 피드백을 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피드백을 받으면 종종 글의 호흡이나 글 쓰는 과정 전체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짧고 간단한 글이라면 먼저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본인도 평소에 많이 찾아 읽고 피드백을 즐겁게 자주 남겨야 한다. 그렇다고 피드백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잘 읽었다면 잘 읽었다고, 오타가 있으면 오타가 있다고 말해주는 정도여도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의견이라면 글 뒤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정중하게 쓰자. 기본이다. 피드백을 주는 일은 내 글을 쓸 때도 더 넓은 관점으로 글을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독자를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글이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스스로도 여전히 두려운 일이긴 하지만 “지적 받으면 더 고민해보고 고치면” 된다. 그런 면에서 블로그는 매우 편리하다. 문제가 생기면 고치거나 글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맞춤법 검사를 수행하고 비문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이 두 가지는 글을 읽는 과정을 방해하며 글이 전달하는 내용을 흐리게 된다. 맞춤법 검사 도구를 사용해보고 글을 꼼꼼하게 읽어 비문을 수정하자.
올해는 내 스스로도 글쓰기 개미지옥에서 탈출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더 부지런히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code.org 이후로 코딩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보게 된다. 한국에서도 공통 교과에 코딩을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기술 발전에 따라 기초 학문으로 가치가 높아지고 있고 수학과 같이 논리적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의견부터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코딩 학원과 같은 사교육 열풍만 불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까지 다양했다.
코딩 교육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실제로 교육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code.org에서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Code Club 프로그램에서는 만9-11세를 대상으로 스크래치부터 기본적인 웹개발(HTML, CSS), 파이썬 등을 학습하는 커리큘럼을 학교 현장에서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찬반을 하기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고 시행착오를 넘어 성숙하고 있는 단계로 느껴진다.
어릴 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효율적인가에 대한 생각은 사실 미술과 음악, 작문과 같이 자기 생각과 관점을 표현하는 수단이라 생각하면 더 와 닿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법을 하나 더 배운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크게 잘못되거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또래 세대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배운 HTML로 학급 웹사이트를 만들고 포켓몬 도감을 만드는 데 시간을 썼다. 한 학년을 마치며 그 기간을 기억하기 위해 학급 문집을 만들고 각자 기념할 만한 물건을 타임캡슐에 넣어 묻었던 일을, 지금 어린 세대는 오늘을 기억하려는 방법으로 스크래치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함께 공유하고 마인크래프트에서 함께 지은 건물과 탐험했던 지역을 보며 회상한다. 지금 당장에도 이 세대가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내는 수많은 미디어를 Youtube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어린 세대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많지 않아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저스틴님 댁에 놀러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집 막냇동생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들어갈 때마다 이 세대의 삶에서 컴퓨터를 어떻게 소화하고 활용하는지는 이미 내 상상 이상이다.
어릴 때 코딩을 배우는데 어렵게 느끼지는 않을까? 이미 추상화된 아이디어가 일반화된 세대에게는 Car, MyCar 클래스를 만들어 설명하기보다 “마인크래프트에서 블럭의 종류는 여럿이지만 블럭은 다 같은 크기고 가방에 넣을 수 있어.” 식으로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놀이터에서 그네와 시소를 타고 학교에서는 그 과학적 원리에 대해 배웠던 것과 같이 이런 환경에 일찍 노출된 세대라면 코딩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 않다. 우리의 사고와 접근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마우스와 키보드 인터페이스보다 터치 스크린을 먼저 접한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훨씬 간단하고 익숙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내가 교육 현장의 일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자녀가 있는 처지는 아니라서 이게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기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지금의 세대에겐 논쟁거리가 될 수 있어도 이후 세대에겐 당연하고 필수적인 생활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지 않고 스마트폰만 만진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의 어린 세대에게는 그런 모습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1 지금의 홈 오토메이션은 별 볼 일 없게 느껴지지만, 미래 세대는 훨씬 많은 모듈을 사용해 직접 로직을 구성하고 활용하게 될 것이고 이처럼 일상에서 프로그래밍적 사고가 필요한 일이 더욱 많아져 지극히 당연한 교육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쯤 되면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산업혁명 시기 러다이트 운동과 나란히 배울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 이면에는, 영미권과 한국을 비교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좁은 언어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영국의 Code Club의 커리큘럼이 호주로도 들어와서 호주판 Code Club 네트워크를 순식간에 구축한 것과 같이 동일 언어권에서는 빠르게 확산하고 지식이 공유된다. 한국어 사용자에게 있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학습에서 영어를 직접 사용하거나, 생성자, 소멸자, 발생자와 같은 한문 조어를 통해 배우는 것도 부차적인 학습이 따라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뒤로 밀어둔다 하더라도, 귤화위지라는 말과 같이, 해외 사례를 모델로 삼아 번안된 교육안으로 적용하는 일은 단순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옮겨 심는다고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환경도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하다.
나도 방과 후 교육으로 HTML을 배우고서 웹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웹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에 계속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나는 문과를 선택했고 대학도 지리교육을 전공했다. 코딩을 배운 경험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불평할 여지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적 접근 방식을 배웠다.’ 식으로 경험을 말하기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 판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방식, 코딩을 배운 것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이상하고 어색하다. 내 삶에 있어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 있어서 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2 그래서 나에게는 더더욱 “코딩 교육이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 보다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한가에 대해 더 관심이 간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엔 이미 현실이다. 환경과 인력의 부족으로 포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제대로 된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 개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개인의 경험이 공공의 지식이 되는 과정 없이는 교육적 토대와 사회적 기틀이 생겨나기 어렵다. 나는 어떻게 배웠고 어떤 부분이 쉽고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공유해야 한다. 내가 아는 지식을 타인, 더 나아가 다음 세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눠야 한다. 그리고 이런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교육에 어떻게 녹일 수 있는지 담론을 구성해야 한다. 그 역할이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그 세대가 자라면 공공장소에서 홀로그램 켜서 통화하는 사람은 예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
지금은 업계에 있어 설득이 덜하게 느껴지지만 5년 전만 해도 이렇게 웹개발을 할 것이란 생각을 전혀 못 했다. ↩
트위터를 통해 읽게 된 Javascript, the New PHP 라는 아티클은 JavaScript가 PHP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몇 사례를 들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쉽게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과 단점으로 만들어진 PHP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JavaScript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어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이다. 특히나 나도 비슷한 기술 스택을 가지고 있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쉽고 간단한 코드가 깊은 레벨로의 학습보다 복사-붙여넣기로 지금 당장 동작하는 코드를 선호하게 한다.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개발자들 스스로가 공부하는 것을 귀찮아 하거나 필요하다는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전문가로 생각한다.
위 아티클에서 인용된 Stackoverflow의 안좋은 답변에서는 초심자를 위해 어떻게 질문에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눈 여겨 보게 된 부분은 합당한 답변보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옳은 답변(지금 당장에 동작하는 코드)를 선택함으로 잘못된 코드가 계속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낮은 수준의 개발자들이 낮은 수준의 개발자를 끊임 없이 양산한다. 커뮤니티는 보수적으로 변하고 새로운 기술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깊이있게 알지 못하는 개발자를 정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 스스로 쉬운 언어 속의 옅은 개발자로 삶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경계해봐야 한다.
"이것들을 익혔을 때의 좋은 부가효과는, 사용하는 모든 언어에서 더 좋은 개발자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스칼라와 자바스크립트 모두에서 클로저나 다른 테크닉들을 익히는데 정말 도움이 됐고 더 좋은 자바스크립트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스칼라 개발자의 글
생활코딩의 강의 영상이 1,000건에 다달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밥 로스와 같이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강의하는 내용들은 제목이 말하듯 누구나 생활에서 코딩을 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생활코딩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공유된, 일종의 회고 영상인 ㅋㅋㅋ전략이 참 인상적이라 포스트 하게 되었다. 해당 영상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이고잉님의 그간 수고와 노력, 그리고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내용으로 단순히 이 ㅋㅋㅋ 전략은 생활코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 서비스 프로바이더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전략이다. 세가지가 모두 중요하나 이 세가지가 한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각 영역이 나선형으로 상호작용하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단 한번의 기획으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완하고 그 보완 과정에서 과감하게 컨테이너를 개편하는 등의 결단, 그리고 징글징글하게(?) 꾸준하게 만들어지는 컨텐츠,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커뮤니티. 단순하게 세가지로 집약되는 ㅋㅋㅋ전략은 가장 쉽고 가장 어려운 전략임에 틀림 없다.
2년이란 기간, 지금까지 달려온 생활코딩에 박수와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 성장할 그 모습을 힘차게 응원한다.
미술사에 대한 관심은 어려서부터 많았다. 외삼촌이 미술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며 수많은 미술 서적들을 우리집에 두고 갔다. 올 컬러 인쇄의 호화 양장본이었고 오랜 기간이 지난 책인데도 약간 퀘퀘한 냄새가 날 뿐이지 작가의 그림을 보기에, 그리고 뒤에 붙어있던 작가의 설명을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걸 유치원 때 재미있다고 읽고 보고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가끔씩 들여다보던 책이었다.
본격적으로 미술사에 대해 책을 찾아보고 공부하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고등학교 때 소설 _<냉정과 열정 사이>_를 보고나서 였다. 소설 중 아가타 쥰세이의 직업은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복원사였는데 흥미가 생겨서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다카시나 슈지의 <명화를 보는 눈> 등 여러 미술사 관련 책을 통해 좀더 체계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스탕달 신드롬은 _명화와 같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보게 될 때 겪는 현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의식이 혼미해지거나, 심하면 환상을 보는 등의 경험을 하는 것을 뜻_한다. 이전까지는 미술을 책으로만 접했던 나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다가 너무 놀랐는지 미술관 한복판에서 현기증에 주저 앉은 적이 있었다. 그게 진짜 스탕달 신드롬인지 그냥 다리 힘이 갑자기 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 이후에는 좀 더 깊게 미술사를 살펴보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근래에도 National Gallery of Victoria에서 인상파전을 하길래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요번에 출근하며 가만 기억을 더듬다가 프로그래밍에도 스탕달 신드롬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실무에 있다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이 점점 옅어져 권태에 접어들거나 좌절감에 빠져들기도 한단다. (난 경력도 얼마 안되는데도 나에게서 요즘 이런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개발일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에 빗대어 생각하게 되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해결책을 찾았을 때라거나,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작성한 코드를 보고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현기증이 나고 마는 프로그래밍 스탕달 신드롬! 가끔 마주하는 그런 순간들이 프로그래밍의 깊이를 더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지 않았던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한참 생각하다 그 설렘이 가장 컸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되감아 생각해보니 무엇보다 가장 강렬했던 그 순간은 이런 저런 복잡한 일이 아닌 Hello World를 화면에 가장 먼저 띄웠을 때였다.
처음 Hello World에서 보았던 미래를 다시 가슴에 품고, 프로그래밍 스탕달 신드롬을 기대하며 부지런히 해야하지 않을까. 얼렁뚱땅 결론을 내는 기분이 나지만 ^^; 다시 그 스탕달 신드롬을 마주하는 순간을 기대하며 부지런히 나아가야겠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에서는 데스크탑을 지원해줬는데 지금의 회사에서는 이동이 많은 관계로 데스크탑 대신 노트북을 지원해 줬었다. 입사 당시에는 회사에 있던 Acer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잦은 멈춤 현상으로 작업본을 몇번 날려먹자 회사 앞 Officeworks에 가 사용할 노트북을 구입했다. 에이서 모델을 제외하고 나니 해당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던 기종이 삼성 아니면 아수스 모델이었는데 이상하게 가장 괜찮은 사양이 삼성 모델이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일이 급했던 관계로 삼성 노트북을 구입했고…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삼성 노트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키배치였다. 좁은 공간에 편의를 위해 넘버패드를 넣는 것까지는 좋은데 방향키와 엔터키, 넘버패드 0키와 우측 컨트롤, 시프트 키의 동선이 기존 키보드와는 맞지 않아 엄청난 불편함을 초래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입장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차라리 아래로 넓게 공간을 활용해 방향키를 뺐더라면 사용성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런 기형적인 키보드 구조[^p1569-1]로 인해 매 작업마다 위 나열한 키들이 멋대로 눌려 매번 스트레스를 야기했다. UX를 고려하지 않은 키보드 레이아웃이 작업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극단적인 불편함을 초래했던 키보드를 대체하기 위해 일반적인 레이아웃을 가진 키보드도 하나 구입해왔다. Logitech K120 모델로 맴브레인 키보드인데 노트북의 기형 레이아웃을 벗어나 정상적인 규격의 키보드를 사용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전 한국서는 아이락스 팬터그래프 키보드를 사용했었는데 팬터그래프라 그런지 손가락 끝이 미끌리는 기분도 들고 정확히 눌린다는 느낌이 덜했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맴브레인이라 그런지 눌리는 느낌도 정확하지만 팬타그래프에 비해 조금 더 손가락에 압력이 강하게 느껴지는듯 싶다. 물론 노트북 키보드에 당한걸 생각하면 뭐든 안좋은게 없겠지만 말이다.
노트북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자연스레 VDT 증후군에 노출되게 된다. 난 예외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예외일 수가 없었고 특히 12월부터는 어깨와 목, 손목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보다 내 몸이 먼저 상하겠구나” 생각이 들어 환경을 개선하고자 이리저리 알아봤다. 일단 모니터를 하나 더 구입해서 듀얼 모니터로 구성을 했다. 원래는 외장으로 쓰는 모니터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노트북 스탠드를 구입해보려 했으나 신기하게도 호주에서 판매하는 스탠드는 한결같이 금방이고 부서질 것 같은 녀석들만 엄청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기왕 사는 김에 고해상도 모니터를 구입해보자는 생각도 들어 델에서 판매하는 U2312MH를 구입하게 되었다. 원래는 집에서 사용하려고 구입했으나 그걸 못참고 사무실에서 개봉해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p1569-2]**를 조금 바꿔보면 “훌륭한 목수가 연장 탓을 안하면 VDT 증후군에 걸린다.” 가 되겠다. (뭐 내가 훌륭한 목수란건 아니지만.)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좋지 않은 개발 환경이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되짚어 볼 수 있었다.
1) 이런 기형적 키보드 레이아웃은 삼성 뿐만 아니라 요즘 대다수의 노트북에서 사용되고 있는 “트랜드”라고 한다. 뭔가 슬픈 유행이다.
2) 사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의 본 뜻은 자신이 잘하고 못하는걸 연장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말이지 좋은 연장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처음으로 웹문서를 작성해 본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방과후 컴퓨터 수업에서였다. 몇가지 엘리먼트를 알려주고 하이퍼링크를 통해 두세개의 웹페이지를 연결한 것이 전부였지만 그게 내 첫 헬로월드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것 아닌 페이지였지만 그 페이지가 나를 웹이라는 세계로 초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마침 ADSL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아 이후로도 꾸준히 웹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유행해서 플래시도 열심히 공부했었고 (플래시3에서 4로 넘어가던 때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때마침 홈페이지반이란 클럽이 생겨 거기서 만난 친구를 통해 php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엔 개발보다 웹디자인이 좋아 이것저것 늘 포토샵으로 만드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 재학중 정보올림피아드 지역 예선에 참가했었는데 베이직이고 뭐고 전혀 모르던 나는 당연히 떨어졌다. 그 이후 떨어진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래밍 교실에서 C를 배웠는데 내 일생 중 들었던 유일한 개발강의였고 너무너무 재미있었으며 그때 배운 것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고 있다. (C개발을 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로 하려 했었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 모두 반대하던 중에 이사장 비리까지 터져 결국 일반계 고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때야 이것저것 한 일이 많았기도 했지만 깨작깨작 디자인도 하고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취미로 해오던 부분이 돈이 된다는걸 대학교 2학년때 알아서 그때부터 실무에 뛰어들었고 일을 하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의 통제된 네트워크에서도 개발이 계속 하고 싶어서 js로도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고 java도 책 들고가서 부지런히 공부했다. 전역 후 일년 여 개발한 후 호주에 넘어올 결심을 하고 호주로 넘어와 현재도 개발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php가 가진 한계점도 생각해서 다른 언어에 대해 공부를 하려고 부지런히 알아보는 중이다.
문제가 많다고 하는 php를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만져왔기 때문에 그 관성이 있어서인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php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는 이미 많은 글에서 까여왔으므로 생략하고…) 쉽지 않다는게 언어를 습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해왔던 것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설 때가 요즘 좀 많아졌다. 뒤돌아보면 이렇게 고민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새로 배우는 것이 늘 즐거웠고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게을러진 내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다. 일을 하며 잘 못할 때에도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모르면 공부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자신감이 좀 덜해졌달까. 게을러지고 있달까.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 IT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비 종사자들이 물어보는 질문 중에도 평생 배워야 하는 직업인데 계속 배우면서 하는거 힘들지 않겠냐, 어렵지 않냐 하는 질문이다. 자고로 개발자는 학습에 대해 늘 즐거워 하는 자세로 대해야 하는 직업인 것은 맞다. 한국서는 관리자로의 커리어 패스가 일반화되어 몇년만 고생하고 관리자가 되면 된다는 식의 사람도 몇 보긴 했지만 평생 개발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개발자는 사실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학자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맞는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즐겁게 받아드리고 재미있게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 헬로월드에 두려워하지 않고 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또 함께 꾸려나가는데 두려움이 없는 것이 진짜 개발자의 모습이란 점을. 헬로월드가 화면에 띄워지는 순간 얼굴에 웃음기가 돌고 모든 것을 배운듯한 기분이 들었던 그 시절을 상기해본다. 그리고 그 첫 마음을 다시 떠올리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달려야겠다. 그래서 나도 물어보려고 한다. 당신의 헬로월드는 안녕하신가요? 하고.
내가 하루키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난 평범한 학생이었고 흔히 구입하는 정석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다 당시 신간으로 막 나왔던 <해변의 카프카>와 <냉정과 열정 사이>를 같이 구입했다. 한없이 쿨한 까마귀 소년으로 시작된 하루키 읽기는 학교 도서관에 있던 하루키의 도서들도 모두 읽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도 의외로 하루키 장서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상실의 시대 (원제:노르웨이의 숲)>도 판권이 들쑥날쑥 했던 역사가 있었기에 다양한 번역본이 있는데 도서관은 그 다양한 스팩트럼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하루키는 기존 단편을 가지고 기억을 짜맞추듯 적어간 소설이 <노르웨이의 숲>이었기 때문에 모든 저술 사이에서 같으면서 다른 기분, 모호한 분위기를 어쩔 수 없이 풍길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로 자연스레 사건과 케릭터는 흐려지고 그 모호성만 감상으로 남게 된다. 그게 내 고등학교의 문학적 감수성(?)을 지배했다.
하루키는 수많은 단편과 연재글이 있는데 국내에도 번역서가 몇 권 있긴 있다. 전속으로 계약된 곳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실로 일본에서도 판권이 제각각이라 그런지 몰라도 출판사마다 멋대로 엮어서 하루키 단편으로 출간하고 있다. 그 결과 번역도 다양하고 그 글마다 풍기는 느낌이 너무 달라 모티브만 가져와 새로 작성한 글과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 글을 쓰며 생각나는 단편은 <꼬깔과자>. 역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루키의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고 하루키의 소설을 원어로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을 왜 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또 그래야겠다고 결심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어는 꽝)
하루키의 수필집이란 이름으로 기고했던 글을 모아둔 책이 시중에 있는데 그게 참 재미있는 책이다. 일상적이고 담백한 문체, 독특한 위트가 묻어나는 수필을 보며 나도 이런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영향으로 (물론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소설도 썼으니 그냥 독자라고 하기엔 조금 그 이상을 지향하고 그 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소설을 보내는데 아무래도 학생이다보니 그랬는지 선생님의 추천서였는지 뭔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생님께 그 원고를 드렸어야 했다. 그 탓에 내 나름 생각의 흐름을 표현하고자 했던 표현들을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교정으로 다듬으셔서 외국인이 쓴 소설과 같은 맛(?)이 났다. 그리고 선생님이 추천서에 쓸 요량이었는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심훈이냐, 박경리냐, 이렇게 물어보셨었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 존경받아 마땅할 분들이지만 영향은 하루키인데 말하면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마침 담임 선생님도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끊임없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술 활동의 속도를 열심히 따라가지 않고 있는 열혈 독자는 반성해야 하려나. 요 근래 나오는 책들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 <1Q84>는 군에서 읽긴 읽었는데 세 권을 붙여놓고 읽지 않아서 내용도 가물가물 하고, 언제 날 잡아서 다시 읽어야지 싶다.
하루키의 글은 언제, 어떤 책을 읽더라도 앞서 얘기한 모호성이 책 머릿말부터 뒷면 검은 바코드까지 지배적이라, 역시 하루키씨는 언제나 한결 같군요, 이런 느낌이다. 시대의 센세이션을 주도하던 작가인데 이제 점점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어 글에서도 정형성이 점점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그게 나이가 들어서 굳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완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쓴 글인데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만간 노벨 문학상 타시길 기대해본다.
PS. 제목은 <곰을 풀어놓다> 패러디. 에세이 중에서도 <고양이를 풀어놓다>로 패러디한 적이 있다.
평평한 기업문화가 가지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잘 기술되어 있는데 벨브의 사내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유연하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유지하는 방식이 고유한 철학으로 녹아있었다. 지난번 기업 문화와 관련한 글 중 개발자에게는 높은 연봉이나 유연한 출퇴근이 아니라(차선이란 얘기다.. 필요 없단게 아니고;;) 개발자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글이 있었다.
인정은 관료틀 안에서 창의를 보장받기 위한 버팀이 되겠지만 이건 하향식의 한계를 일정 덮어버린 것 이외에는 크게 가치가 없다. 관료적인 기업문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타협의 선택이 되겠지만 이제 시작한다면 벨브가 가진 철학을 따라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어.” 라는 생각보다 “한국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이건 분명 블루오션이다!!!!! 앜ㅋㅋ!!!!” 식의 접근을 하는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